온달산성은 남한강변의 해발 427m의 성산(城山)에 축성된 길이 922m, 높이 3m의 반월형
석성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사적 제 264호로 지정되어 있다.

온달산성의 지명과 전설에 의하면 영토확장 경쟁이 치열했던 삼국시대에 한강을 차지하기
위한 전초기지로서 고구려와 신라 사이에 영유권을 둘러싸고 전투가 치열했 던 곳이고
온달장군이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. [삼국사기]의 기록에 의하면,
온달이 화살에 맞아 쓰러져 죽어 장사를 지내려고 하 니 영구가 움직이지 않아 공주가 와서
관을 어루만지면서 "죽고 사는 것은 결정되 었습니다. 자, 돌아갑시다." 그러자 드디어 관이
움직여 장사지냈다고 한다. 온달산성은 삼국시대의 성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보존된
성이라 할 수 있고 네 모난 돌을 정교하게 직사각형으로 쌓았으며, 지표조사 결과, 남쪽의
일부분은 온달 장군과 고구려군이 전사한 후 신라에서 다시 쌓은 것으로 확인되었다.
성산(온달성) 아래에는 굴이 있는데 온달장군이 무술을 닦았다는 전설이 서려 온달
동굴이라고 불리는데 1979년 6월 천연기념물 제261호로 지정되었다.

매년 온달장군 의 넋을 기리기 위해 온달문화축제가 10월말 경에 개최된다.
[고구려의 산성]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 산성은 대체로 3면이 높은 산이나 절벽으로
둘러싸이고 남쪽 만 완만하게 경사가 낮은 곳에 쌓았다. 성안에 두 개나 그 이상의 골짜기가
있으며 산 능선 또는 골짜기를 따라 성벽을 쌓았으므로 적이 공격하기는 불리하고
방어하기에는 유리하며, 골짜기에 많은 병마를 수용할 수 있고, 많은 전투장비 물자를
보관할 수 있다 한다.

영춘면 성산 고성, 아단성으로 추정되는 이 석성(온달산성)도 이런 조건을 그대로 갖추고 있다.
몇 군데 허물어진 곳을 제외하고는 납짝하게 잘 다듬은 돌들을 차곡 차곡 치밀하게 쌓아올린
데다가, 골짜기의 지형을 따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휘감 아 돌아간 모습이다.
본디 남쪽의 신라군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산성이므로, 북쪽 강을 접한 쪽은 비교적 경사가
완만한 반면 남쪽은 치솟은 벼랑 위에 또 다시 절벽 처럼 석성을 쌓아올렸다.